모두 반갑습니다.
이 법안의 입법흐름을 보다가.... 뜬금없지만 국회톡톡 플랫폼의 발전방향에 대해 작은 생각을 적어보고자 합니다.
현재 국회톡톡은 시민제안 -> 찬반의견수렴 -> 의원매칭의 흐름을 갖고 있습니다. 시민의견을 입법으로 이끌어내기 위한 훌륭한 플랫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국회톡톡 플랫폼을 통해 시민제안의 취지만 두리뭉실하게 국회의원에게 전달된다는 점입니다.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두리뭉실한 취지가 제도로 구체화되면서, 문제만 들어낼 수 있는 날카로운 송곳이 될수도 있고, 나쁜점과 함께 좋은점까지 뭉개버리는 망치가 될 수도 있습니다. 법안이 현실적인지, 국회통과가 가능한지 등은 두리뭉실한 취지가 아니라 그 취지가 법안을 통해 어떤 제도로 구체화되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못사는 사람을 돕자'는 취지에 반대할 사람은 많지 않겠지만 '어떻게 도울 것인가'로 구체화하기 시작하면 많은 쟁점이 생기고 토론과 결정이 필요하게 됩니다.
시민사회에서 그런 토론과 결정을 건설적으로 수렴해나갈 수 있는 플랫폼 개발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취지를 구체화하여 법안을 통해 제도로 만드는 과정을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고, 기록하는 것이야말로 시민입법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취지가 모이면 의원매칭을 시도하되, 동시에 연계된 플랫폼에서 구체적인 제도화 과정을 진행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국회톡톡은 기존에 없던 훌륭한 디지털 민주주의 플랫폼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일부 보강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의원 보좌진들이 의료 같은 전문영역에 대한 현실적인 법안을 마련하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런 일을 해낼 책임을 국회에 맡겨 두었으면서, 그걸 수행할 인력, 정보력, 전문성, 시간을 보장해주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사회의 전문화가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전문화된 시민사회 자체에서 구체적 제도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고 수렴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논의 촉진을 위해서 시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논의를 깔아놓을 수 있는 디지털 플랫폼이 필요합니다. 담아낼 수 있는 틀만 있다면, 의견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 법안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만15세 이하 어린이 병원비 국가보장' 이라는 취지가 국회의원에게 전달되었습니다. 그 취지는 '만15세 이하 어린이 입원진료비를 전액보장'하는 제도로 구체화되었습니다.
국회 논의 과정에서 보건복지부와 국회 전문위원실(의원측 인력이 아니라 국회활동을 보조하는 공무원입니다)은 반대의견을 언급하였습니다. 주로, 입원진료만 보장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의견입니다. 도덕적 해이 운운하는 건 화가 나지만, 경청할 만한 부분도 있습니다.
입원진료만 보장할 경우, 외래진료 중증질환 아동(예. 암 사후관리, 심장질환)은 혜택에서 배제되어 차별하는 꼴이 되고, 외래진료가 일반적인 질병(예. 천식)임에도 입원진료를 선택하여 병상이 꼭 필요한 사람이 병상을 이용하지 못할 가능성 등을 주요 문제점으로 지적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입원진료-외래진료에 따라 지원여부를 구분하는 것은 의료수요의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프지만 학교를 다니고 싶어서(그리고 다닐 수 있어서) 외래진료를 선택한 아동의 경우 고액 외래진료를 지원받을 수 없는 그런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 법안 자체는 동력을 상실한 것처럼 보입니다.. 국회 속기록만 보기에는 비슷한 시기에 국회 제출된 다른 법안들이 세부심사를 거쳐 최종 표결을 앞두고 있는 반면, 이 법안은 1차례 논의 후 세부논의가 멈춰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맞나요?). 논의가 재개되지 않는다면, 20대 국회 종료와 함께 법안은 폐기될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도 지금도, 의원이 국회에 제출한 법안의 80% 정도는 꾸준히 폐기되고 있습니다. 법안은 다듬어서 다시 제출하면 됩니다. 국회 논의 과정에서 아동 의료보장의 취지를 부정당한 것이 아닙니다. 제도가 현실성이 다소 떨어진다는 의견이 있었을 뿐입니다.
제도를 어떻게 구체화할 수 있을까 비전문가 입장에서 고민해 보면 머리속에 물음표만 늘어나고 결론 내리기는 어렵습니다. 입원, 외래 구분없이 전액지원하는 건 어떨까? 그럼 재정문제는 없을까? 특정 약이나 치료방법을 지정해서 지원하면 될까? 무슨 기준으로 지정할까? 만16세가 된다고 아픈 것이 치료되는 것도 아닌데 만15세까지만 지원하는 건 어떤 의미를 가질까? .....한 사람이 곰곰히 생각해서 낼 수 있는 결론이 아닙니다. 수학 문제처럼 결론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닙니다.
국회 전문위원실은 검토보고서에서 다음과 같이 권고하고 있습니다. 아동의료에 대한 실태조사후, 비급여부분(건강보험이 적용안되고, 의료가격관리도 안되는 부분)에 대한 관리체계 구축한 뒤, 중증질환 중심으로 의료보장을 강화하라는 것입니다.
논리적으로야 타당성 있지만, 실태조사, 비급여 관리체계 구축은 많은 인력과 긴 시간이 들어갑니다. 전통적으로 인력, 전문성이 높고, 이런 문제를 고민할 시간이 많은 곳은 행정부(보건복지부,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입니다. 하지만 국회 속기록에서 보건복지부 장관 발언의 뉘앙스를 볼때 관련 법안을 적극 추진할 의지는 없어 보입니다. 행정부에서 신중 검토하여 추진하겠다는 말은, 일단 서랍 속에 넣어두겠다는 의미입니다.
전문분야에서 법안의 현실성 담보를 위한 일반적인 경로는, 국민의 정치적인 지지를 모아 행정부를 압박하는 것입니다. 운동본부 출범 등을 통해 국민적 지지를 확보하면, 보건복지부도 이를 무시할 수 없습니다. 법안이 통과되면 어차피 보건복지부가 집행해야 하고, 발생하는 문제점은 보건복지부 책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보건복지부는 의지를 갖고 보다 현실적인 대안을 만들어 국회에 제출하게 될 것입니다. 정치적 지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른 경로도 가능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사실은 가장 정책에 가까이 있는 시민들이 직접 제도를 구체화해보는 것도 가능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정보기술을 잘 활용하면 시민 주도로 제도를 만들어 볼 수도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제안을 받은 의원님들도 입법 추진이 훨씬 수월해질 겁니다. 논의를 굴릴 수 있는 플랫폼이 잘 구축되어 있으면, 많은 환자, 의료인, 변호사, 공무원들이 각자 스마트폰을 들고 점심시간에 한마디씩 던지는 것들이 모여, 좋은 제도의 초석이 될 수도 있겠다 생각합니다.
길어졌습니다 ㅎ